[그리다가, 뭉클]
副題 : 매일이 특별해지는 순간의 기록
이기주, 터닝페이지, 2024년 10월, 볼륨 291쪽.

작년말 우리집 家長(집사람, 와이프, 아내, 허니 등 으로도 부를 수 있는)이 십 여권의 미술관련 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방구석 미술관1. 2] 등과 함께 이 책도 포함되어 있었네요. 작가 이름보고 [말의 품격], [보편의 단어],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인줄 알았습니다. 동명이인입니다. 책상 한켠에 쌓아두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다른 대출 도서 반납기한에 밀려, 이제서야 손이 닿았습니다.
이기주 님은 건축을 전공했다는 것, <이기주의 스케치> 라는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는 구독자 40만명의 크리에이터 라는 정도만 정보를 알 수 있네요.
책은 글 반 그림 반 입니다. “누구나 겪었을 순간의 장면과 한 번 쯤은 생각했던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소소한 우리들의 일상 모음집”이라 작가 스스로 이 책의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日常에서 마주치는 익숙한 풍경에도 관심과 애정을 담고 보아야, 그때서야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는 걸 책을 읽고 보며 알게 됩니다.
일년 반쯤 전에 친한 친구가 어반 스케치를 시작했습니다. ‘하다 말겠지’ 했는데 살인적인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 꾸준히 그림을 배우고 야외 스케치를 나가더니,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을 그려 내더군요. 더불어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더니 반 년 만에 작품 게시물 990개에 팔로워 4,200명을 달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에게 잘 맞는 평생 취미가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의 기본이라며 매일매일 선긋기 연습을 수 백일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열정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렸습니다.
친구 덕분에 어반 스케치와 어반 드로임의 차이점(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리는 게 어반 스케치, 장면을 사진 찍어 보고 그리는 그림이 어반 드로잉)도 알게 되었고, 시작부터 끝까지 종이에서 펜을 떼어내지 않은 상태로 그림을 그리는 컨투어 드로잉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엔 손 글씨를 이용해 구현하는 시각 예술인 캘리그라피에 푹 빠져, 저랑 잘 놀아주질 않네요 ㅎㅎ.
책을 보다 보면 행복함이 느껴집니다. 해질 무렵 빨갛게 물든 노을 모습이나, 도시에서는 불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의 아름다움, 농촌의 고즈넉하고 차분한 모습 등 우리가 자주 잊고 지내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전공하고 지금도 작품 활동을 하는 오랜 지인이 “수채화를 제대로 그리는 게 참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무슨 말인가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그림은 시간으로 그린다. 물이 적당히 말랐을 때 다음 색을 칠해야 하는 경우와 다 말랐을 때 다음 색을 칠해야 하는 경우의 사이 어디쯤을 꼭 집어 채색하는 건 늘 어려운 일 이다… (중략) 그래서 수채화는 기다림의 그림이다.”는 문장을 발견하고 그제서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수록된 그림 보는 것 만으로도 책값을 이미 한 책입니다. 거기다 그림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더해 있으니 안 읽으면 손해랄까요? 그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 드립니다.
올해 11번째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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