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류시화, 수오서재, 2023년 12월, 볼륨 260쪽.

시인이자 여행자, 영성과 관련 된 책을 주로 내시는 류시화 님의 신간 산문집입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셨네요. 작년 12월에 초판 1쇄가 나왔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7쇄가 인쇄 된 책을 읽었습니다. 서문부터 총 44편의 산문이 실려 있습니다.
서문부터 인상적입니다. “나를 감동시키는 책은 다 읽고 난 후에 그 책을 쓴 작가가 나의 친한 친구가 되어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 전화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다.”라는 문장이 쑥 다가오네요. 책을 읽고 좋으면 주변에 소개하고, 독후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가진 저에게, 책을 읽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인식하게 한 구절입니다.
“글을 읽고 공감하는 독자는 연인보다 동지입니다. 그 이유는 동지가 더 뜨겁기 때문입니다”는 구절을 읽고, 그 감상을 남기는 일이 헛일이 아닐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예정 되고 기대한 인생이 아닌, 그 때 그 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 십니다..
“좋아하는 것 백 가지를 적어 보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하루하루를 채워 나갈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자기를 정의하자.”란 문장에선, “나는 무엇 무엇이 싫어”라는 부정의 말보다, “나는 이래 이래서 좋아”라는 긍정의 말이 바람직함도 배우고요.
“여행은 어느 곳을 가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백 번을 들어도 맞는 구절입니다.
카프카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베를린 근교 공원을 산책하다 어린 소녀를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형을 잃고 슬피 우는 소녀에게, “너의 인형은 여행을 떠났다” 위로하고, 인형을 대신해 소녀에게 매일 편지를 씁니다. 아직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소녀에게 자신이 쓴 편지를 읽어주고요. 마지막 만남의 날 소녀를 위해 새로 산 인형을 들고 소녀에게 전달하니, 내 인형과 전혀 안 닮았다는 소녀에게, “여행이 나(인형)를 변화 시켰다”는 이야기를 읽은 것 만으로도 이 책값은 뽑은거 같네요.
카프카처럼 삶을 예술로 만드는 이가 진정한 예술가이며, 삶을 꽃 피우는 두 가지 방법중 하나는 스스로 꽃을 피우는 일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삶이 꽃피어나도록 돕는 일임도 알게 되고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젊은 시절, 그를 사랑하는 여인에게 청혼을 받고, 자신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던 에피소드가 압권 이였는데요. 그는 도서관으로 가, 사랑과 결혼에 대한 책을 찾아 결혼하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기록했더니 좋은 점이 354가지로 나쁜 점보다 4개가 많아 결혼하기로 결정했는데, 결정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청혼했던 여자는 이미 다른 이와 결혼해 아이를 둘 씩이나 낳은 상태였다는 부분에선, 모든 일은 심사숙고도 중요하지만 失期하지 않음이 더 중요함도 생각하게 하구요. 목욕탕에 붙어 있다죠? 모든 이에게는 때가 있다고.
20시간이 넘게 타고 가는 2인실 기차 안에서 만난 한 인도 남성과 나눈 이야기도 의미심장합니다. 서투른 힌두어와 영어로 열심히 자기 이야길 했는데, 듣는 인도인은 단 한 번도 차창 밖을 내다보거나 지루해하는 기색 없이 집중해서 듣더랍니다. 시간이 흘러 먼저 차에서 내려야하는 인도인이 작별인사로 말했데요. 자기는 영어를 하지 못하고 힌두어도 잘 알아 듣지 못한다고. 하지만 당신의 이야기는 내 가슴으로 들었다고. “그 인도인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내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들었다. 모든 만남의 의미는 조언이나 설교가 아니라 포옹이다. 포옹이 필요한 사람에게 강의를 해서는 안 된다.” 속으로 뜨끔하더군요.
260쪽 분량의 책이지만, 실려있는 글들은 한 편 한 편 무게를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류시화 라는 이름에 실망하지 않을 책이라 일독을 추천합니다.
올해 17번째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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